“근래에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은 공간을 힘 있게 눌러주는 산과, 그를 너그러이 포용하는 강과, 그리고 그 주위를신비롭게 감싸주는 안개구름과 짙게 깔리는 햇빛들입니다. 이른 새벽과 어스름한 저녁에 이루어지는 그들과의 은밀한 영적 만남은 나의 영혼을 전율케 합니다. 마음을 쫓아가지 못하는 몸을 항시 생각하면서….”(1983년 신신화랑 개인전, 山과 江)

그의 풍경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조형적인 특징은 리듬감이다. 크고 작은 원형의 이미지가 밀집하여 풍경을 구성하는 방식인데, 이들 원형의 이미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리듬을 촉발한다. 마치 동그란 물방울들끼리 서로 접촉하면서 연대감이 생성하듯이, 원형의 이미지들은 연결감을 통해 결속하면서 리듬을 부추긴다. 따라서 전체적인 통일감과 더불어 무언가 움직이는 듯 싶은 동적인 이미지를 지어낸다. 산의 존재가 겹겹이 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리듬감이 살아난다. 리듬감은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대지의 은닉된 힘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치중의 그림은 자연에서 받은 총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매우 심플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그림인데 그것은 구상이면서도 결국 몽환적인 색채, 구획된 붓질, 평면적인 화면 구성, 원형의 고리들의 연쇄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구상이자 추상적인 자취이며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그림을 이루는 조건들이 물리적 각인이다. 색채들은 기화하고 이동하며 흐른다. 붓질과 색채의 이 흐름과 이동, 흔들림, 진동은 작가의 신체성과 함께 자연의 생명력과 순간의 파동 같은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붓질과 색채로 파악되고 직관으로 포착된 세계의 한 순간 이 이미지화되어 있는 것이다. 화면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각적으로 흔들리고 겹쳐지는 느낌을 발산한다. 다소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는 변화무쌍한 대기의 변화를 드러내고 자연에서 받은 작가의 감정과 인상을 시각화하는 정보가 된다. 특히 세계를 모두 색으로 환원하려는 적극적인 작가의 의지를 만난다. 그 색채는 사물의 고유색이나 결정적인 색채가 아니라 임의적이고 화면 구성의 조형 아래 자율적으로 구축된 색이다. 이처럼 김치중의 그림은 자신의 감각에 의해 받아들인 자연세계를 색으로, 빛으로 잡아내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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